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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김남열 평론

시인 김남열의 '문화에 녹이 쓰는 것은'

by 월간 매거진 2022. 5. 15.

문화가 녹이 쓰는 것은

김남열

문화의 양태

 

문화는 그 나라의 사람과 함께 하며 영고성쇠榮枯盛衰하여 왔다. 문화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중요한 행동 양식이나 표현되는 모든 부분을 뜻한다. 정확히 정의 내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그것은 문학, 예술, 종교, 과학 등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는 나라마다 각 특색을 지니면, 한 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지방색을 지니고 있으며, 문화 문명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러기에 문화는 그 나라의 역사와 민족과 함께 이어온다. 한마디로 정신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그 정신은 그 나라마다의 고유한 주체적 정신이며 ‘혼’이다. 그 혼이 사라진 나라는 미래가 없으며 희망이 없다. 사람이 정신이 나가면 사람처럼 보이지 않듯이 나라도 마찬가지로 나라를 발전 시켜나가는 ‘혼’이 없으면 그 나라는 언제나 외세의 침략을 받아 속국이 되거나 그 나라의 존재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남는 것은 ‘흔적’이다. 사라진 나라의 유물이다. 사라진 나라의 사라지기전의 풍속이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적 유물이며 문화라고도 한다. 이렇듯 문화는 ‘과거사 속의 문화와 현제 속에서 이루어진 모두를 통칭’하며 사람과 함께 해 왔다.

 

녹이 쓸어 가는 문화

 

인간은 문화적 인간이며 그 문화 속에서 그 문화를 반영하며 형성시켜 나가는 존재이다. 즉, 인간이 없는 문화는 없으며 모든 문화가 과거든, 현재이든 인간 삶의 연대기적 모든 흔적이다. 그 문화를 통하여 현재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기도 하고, 복고적인 감각을 살려 현대적 모습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문화는 사람들의 삶속에 녹아들며 삶과 함께하기에 인간의 생활 자체라고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변형된 문화도 있다. 우리의 문화가 아닌데 우리의 것처럼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문화가 유입되어 우리의 것처럼 되는 경우이다. 주로 대표적인 것이 학문과 종교적 문화이다.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여타한 문화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화 된 외래문화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여타한 외래문화가 우리화 되었다 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고유한 문화이다. 우리나라는 배달문화의 민족이며 국민이다. 그것이 우리 뿌리의 시작이다. 그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문화는 우리의 전통적 문화가 아니다. 배달倍達은 고대의 나라였던 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배달’을 ‘환웅’이 다스리는 나라 신시神市라고 주장 한 이후 주장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짜장면 집의 식자재의 짜장면 한 그릇 값같이, 배달 전문으로 하는 업체의 물건처럼 값어치 없이 여겨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경시 되어야 할 배달의 한민족인 배달은 그런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체적 정신이 사라진 나라의 문화는 문화로서의 신비성과 고유의 모습을 잃는다. 주체적 우리 역사의식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가 녹이 쓸었다는 것이다. 녹이 쓸었기에 문화 또한 녹이 쓸어 썩는 것이다. 녹이 쓴 기찻길은 기차가 다닐 수가 없다. 인간의 생각이 녹슬면 문화도 녹이 쓸고, 전진하는 발전이 더디고, 그 우수성도 사라지며,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의 생각이 녹이 쓸면 인간이 병드는 것과 같다.

 

인간의 생각이 녹이 쓸면 병이 온다

 

“이별은 당신의 별 저별은 나의 별 헤아리며 밴치에 누워 사랑하든 사람과 사랑을 속삭이든 그 때의 순수했던 시절은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제는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지 마음 한켠에 순수의 여백을 찾을 길이 없다”

마음 비우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 이기이 마음이 고집이 된다하더니만 그 말이 실제인 것 같다.
어쩌면 내 마음이 녹이 쓸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녹을 닦으려고 하지는 않고 그 녹을 그대로 둔 채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쌓이고 쌓여 오물이 쌓이는 ‘난지도’가 되는 것이다.
놋그릇도 녹슬지 않기 위해서 닦아 쓰듯이 사람의 마음인들 오죽하겠는가? 녹슬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도 닦아야 한다. 마음도 닦지 않으면 그릇이 녹슬 듯이 녹슨다.

우리 문화도 빠르게 녹이 쓸며 우수성을 잃어간다면 그것은 우리 국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녹이 쓸면서 방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래문화를 우리 문화인양 받아들이면서 우리 문화를 경시하는 경우에서 발생하는 원인도 많다. 허나 마음을 깨끗이 닦으며 우리 문화를 말로써 빛내는 경우의 사례도 있다. 말 한마디에도 힘이 있고 에너지가 있는 것처럼, 단어의 선택과 사용은 중요하다. 남양주에 봉선사에 가면 대웅전의 한문 간판을 ‘큰 법당’ 이라고 한글 현판이 쓰여있다. 얼마나 우리 한글의 우수하며 자랑스러운 모습인가. 머리는 쓰라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며 오히려 가슴을 후벼판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 녹이 쓰는 경우이다.

 

마음도 녹쓰니 생각이야 더할 나위 없다. 주위에 있는 문화현상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딱지 않으면 생각도 하지 않게 되고 자연, 사람 스스로가 사용하는 말 및 문화도 하나 둘 잃어가던지 퇴색되어 간다. 몸을 닦는 것은 곧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며 구조적으로 그것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되새겨 보면 깨달을 수 있는 이치이다.
그리고 말을 잃어가면서 하는 행동도 느려지고, 깜박깜박 하던 일도 잊게 된다.
그것이 치매 증상이다. 치매가 걸리면 주위 사람들이 여럿 불편하다. 사람이 치매증상의 정신도 마치 꽃이 피면 온 누리에 퍼지듯,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곳에 사람의 정신도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하나의 깨우침 속에 천리만리의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치매는 마음을 닦지 않은 곳에서도 온다고 보아야 하겠다.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모든 사건 사고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에 의하여 모든 일들이 생기고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사고가 녹이 쓴다는 것은 사람이 생활 반경에서 접하고 있는 환경 속의 문화적인 말과 행동을 녹슬게 만들며 그로 인하여 우리는 사고 자체가 느슨하게 된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며 생각하는 존재이라는 것은 막연한 명제가 아니다.
그 명제 속에는 인간이 건강해야 하고, 사고하지 않으면 인간의 건강에 이상이 온다고 하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
사람의 병은 막연하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문화가 녹이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병이 찾아오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병원과 약이라는 것을 너무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다 보니 본질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병원과 약에 우리의 사고가 문을 닫아버렸는지도 모른다.
문화 역시 우리 주변에 너무 가까이 있으니 그 존재의 참가치를 망각하는 경우이다.

 

“인간은 사고하는 이성적 동물이다.” 이성적 동물인 인간이 갈대처럼 흔들리기 때문에 문제이다.
인간은 외부적인 어떠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척적인 방어기제를 타고 태어난다.
살면서 그것을 발휘하고 안하고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의식하고 있는 자신이 무감이 되었거나 환경 속에 억압되어 발휘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선 한가지부터라도 알아야 하겠다.
‘인간의 마음이 녹이 쓸면 건강은 자연적으로 나빠져서 우리에게 병은 찾아온다.’ 는 기정사실을.
또한, 문화도 우리가 병들면 자연히 무관심하게 되고 방치시켜 버린다고 하는 사실도.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는 사실이 만고의 진리임을 인식해야 하겠다. 그 만고의 진리를 가장 흔한 생각이라 여기고 살다보니 막상 자신에게 닥쳐오는 어려움을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흔한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너무 소중한 진리였다는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소를 잃기 전에 대비하지 않음을 후회한들 소용없다. 그러기에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생활방식 전반에 깔려 있는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 모든 문화양식들을 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이 과거 도굴해간 문화를 버젓이 전시하면서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들을 보면서 여실히 느낄 수 있지 않은가. *필자.김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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